[고두현의 문화살롱] 보호색뿐 아니라 경고색도 필요하다

입력 2023-07-11 17:30   수정 2023-07-12 00:10


“설마, 그럴 리가?”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프랑스 학자 장 앙리 파브르. 어느 날 곤충 관련 논문을 읽던 그가 혼잣말을 되뇌었다. 비단벌레노래기벌이 비단벌레를 잡아 애벌레 먹이로 사용하는데, 먹이가 오랫동안 썩지 않는 비결은 벌침으로 일종의 방부제를 주입했기 때문이라는 대목에서였다.

의구심을 가진 그는 이후 온갖 관찰과 실험을 거듭했다. 그 결과 노래기벌이 비단벌레를 죽여서 방부 처리하는 게 아니라 신경을 마비시킬 뿐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밝힌 논문으로 그는 1856년 프랑스 학술원상을 받았다. 그의 나이 33세였다.
무당개구리는 보호·경고색 겸비
그에 따르면 비단벌레노래기벌은 초록색의 딱지날개를 가진 비단벌레만 사냥해 벌집에 저장하고 애벌레의 먹이로 삼는다. 이와 달리 혹노래기벌은 갈색 등에 흰 점이 있는 점박이바구미만 족집게처럼 골라잡는다. 이 벌들의 공통점은 특정 색깔과 무늬를 지닌 곤충만 잡는다는 것이다. 마치 꿀벌과 닮은꼴인 꽃등에(일명 벌파리)가 독침이 없는데도 벌과 같은 외양 덕분에 적의 공격을 받지 않는 것과 같다.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에서 몸 색깔은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다. 연약한 동물이 살아남으려면 천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기법이 몸 색깔이나 무늬를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것이다. 이를 보호색(保護色)이라고 한다. 새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물은 시력이 사람보다 약하기 때문에 ‘보호색 효과’는 상당히 크다.

보호색 위장술의 으뜸은 카멜레온이다.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그때그때 바꾼다. 숲에서는 나뭇잎과 똑같은 녹색을 띠며, 때론 나뭇가지와 같은 색을 띤다. 사막 같은 곳에서는 모래와 닮은 갈색을 띤다. 카멜레온의 색깔 위장은 피부 안에 있는 특별한 색소 세포 덕분이다. 색소 세포를 넓히거나 오므리며 세포 크기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색깔을 바꾼다.

보호색은 은폐색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자면 나방의 유충은 푸른 잎에 얹혀 있을 때 눈에 잘 띄지 않는 녹색을 띤다. 호랑나비의 번데기도 주위 환경에 따라 녹색 또는 갈색으로 변신한다.

또 다른 위장술의 이름은 의태(擬態·어떤 모양이나 동작을 본떠서 흉내 냄)다. 동물이 자기 몸을 보호하거나 사냥하기 위해 겉모양이나 색깔을 주위와 비슷하게 바꾸는 것이다. 말벌과 비슷하게 보이는 나방, 나뭇가지 모양과 같은 대벌레가 대표적이다. 가짜 눈을 이용하는 의태도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올빼미나비의 날개 무늬는 커다란 올빼미 눈을 닮았다.

바닷속 문어는 보호색과 의태를 모두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생명체다. 문어는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변하고,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그래서 ‘바다의 카멜레온’으로 불린다. 껍질의 색소 세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수시로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선명한 색을 과시해서 경고신호를 보내는 동물도 있다. 이들이 상대에게 자신이 독성을 가졌거나 매우 방어적이라는 것을 알릴 때 쓰는 색채는 경계색(警戒色)이다. 경고색이라고도 한다. 녹색 바탕에 빨간 줄무늬로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광대노린재는 포식자가 건드릴 때 아주 고약한 냄새로 경고를 날린다. 색깔이 화려할수록 냄새와 독이 강한 데다 맛이 고약하기 때문에 이런 동물을 공격해 본 포식자는 두 번 다시 넘보지 않는다.

무당개구리는 두 가지 무기를 동시에 가진 경우다. 등에는 녹색과 검은색 무늬의 위장색, 배에는 붉은빛의 경고색을 가졌다. 평소엔 녹색 배경에서 눈에 잘 띄지 않게 생활하지만, 위험한 순간이 오면 붉은 배를 드러내서 적을 위협한다. 이 신호를 무시한 적은 쓰디쓴 대가를 치른다. 이렇듯 생존을 위한 위장술의 지혜는 오묘하고 놀랍다.

이 같은 동물의 기술을 모방해 인간은 전장에 활용하기도 한다. 전쟁터의 보병과 저격수들은 동물의 보호색을 닮은 위장복을 입고 싸움에 나선다. 감시 체계와 통신 시스템에도 활용한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나 냉전 시대에 각국 국방부와 정보기관이 동물행동학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40년간 10권짜리 역작 완성
보호색의 상징이 위장과 은폐라면, 경계색의 상징은 경고와 위협이다. 이들 상반된 요소는 양날의 칼과 같다. 때론 적군보다 더 위험한 게 ‘위장 아군’이다. 개인이나 사회, 국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선의의 교류든, 경쟁적인 힘겨루기든 응전과 도전은 피할 수 없다. 보호색 일색이거나 경고색 하나만으로는 수많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곤충학의 아버지’ 파브르는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교사 월급은 적었고 먹여 살릴 가족은 많았다. 그런 그가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교육계를 떠나게 된 계기는 황당했다. 교조적인 학부모들이 “공개적인 수업에서 감히 여학생들에게 꽃의 수정에 관해 이야기하다니!”라며 그를 부도덕한 인물로 몰았다. 이에 환멸을 느낀 그는 학교와 박물관 일을 그만두고 시골에 파묻혀 버렸다.

어떻게 보면 그는 보호색도 경고색도 활용할 줄 모르는 청맹과니였다. 하지만 외딴 시골집으로 이사한 1879년부터 1915년까지 약 40년간 그는 평생의 대작인 10권짜리 <곤충기>를 집필했다. 부제가 ‘곤충의 본능과 습성에 관한 연구’인 이 역작이 나오자 사람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와 같다고 극찬했다. 빅토르 위고는 파브르에게 ‘곤충들의 호메로스’라는 찬사를 바쳤다.

그러고 보니 그는 곤충이라는 자연을 통해 보호색과 경고색의 근본 원리를 모두 깨달은 선험자다. 그때까지 학자들이 죽은 곤충을 상대로 연구한 것과 달리 살아 있는 곤충의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올해는 그의 탄생 2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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